[Chapter 6] 너는 이미 깨진 꿈이야
거리 한복판에서 주단과 어떤 낯선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그 순간 주단의 얼굴엔 분명한 당황과 짜증이 비쳤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대화는 암시뿐, 공허한 말들뿐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그렇게 대화해온 사람들처럼.
안이 분명하게 들은 건 마지막 한 마디였다.
주단은 이미 평정을 잃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거야."
그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좋아, 그럼 그 거짓된 인생 혼자 즐기라고."
그는 단호하게 돌아섰고,
주단은 그 자리에 남아 깊게 숨을 들이쉬며 진정하려 애썼다.
억지로 눌러 담은 한숨.
그는 고개를 돌려 회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입구를 지나던 주단의 시선이 안과 마주쳤다.
단 한 순간.
놀람도, 화도 없이.
그저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길만은 피하고 싶다는 듯한 회피.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갔다.
수천 가지 생각이 안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놀람, 당황, 의문... 그리고 이상한 허탈함.
2층 스튜디오2는 메인 스튜디오보다 작고 단촐했다.
작업이 급박해지며 메인팀은 아래층에 집중되었고,
안과 주단만 남아 부족한 내레이션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방은 조용했다.
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천장 형광등과 녹음기 팬 소리만 흐를 뿐.
안은 콘솔 앞에 섰고,
주단은 안쪽 방에 앉아 있었다.
방음 공간이어서 숨소리조차 선명하게 들렸다.
안은 큐시트를 다시 확인하고, 볼륨을 체크했다.
모든 수치는 맞았지만—
그녀는 이제 주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감정이 꼬였다.
그 낯선 남자.
"그 사람은 문제가 있어"라는 말.
구내식당에서의 조롱 섞인 대화.
그리고 주단이 끝내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어떤 반박도, 변명도, 이해받으려는 시도도 없었다.
안은 지금 자신의 감정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무언가 위태로운 감정의 경계에 서 있는 듯했다.
2년 전부터 홀로 한국어를 배웠고,
주단의 영상들을 반복해서 보며 꿈을 꿔왔던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주단이라는 이상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참담하게 마음을 찢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주단이 어떤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굴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아프다는 것만 확실했다.
그녀는 이어폰을 그에게 건넸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주단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았다.
잠시 후, 음성 테스트가 끝나고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마지막 부분 다시 해볼까요?"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필요 없어. 그건 진심이었으니까."
감정도, 냉소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녀의 주변 공기가 말라붙는 듯했다.
그녀가 스튜디오를 막 나서려던 순간,
그날 거리에서 주단과 다투던 남자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가식도, 친근함도 없는 웃음.
"주단이랑 자주 다니는 것 같더라.
걔가 예전에 나랑 같이 살았던 거, 알고 있어?"
안은 굳어버렸다.
이런 식의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다.
"4년.
같은 집. 같은 일. 같은 침대.
그런데 그 사람이 끊었지. 완전히.
말도 없이.
그런 사람... 너를 지킬 수 있을까?"
그는 안이 주단의 '방패'쯤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화도, 당황도 없었다.
단지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왜 그가 당신을 잘라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그가 정말 약한 사람이라면, 저는 알게 될 거예요.
반대로, 누군가를 떠날 만큼 아팠던 거라면...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그리고 그건... 이제 당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알겠어요?"
그는 말이 없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날 오후,
팀은 경기도 외곽의 작은 도시로 이동했다.
한 청소년 댄스팀의 백스테이지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은 늦은 오후에 끝났다.
귀갓길.
버스는 커브길마다 부드럽게 흔들렸다.
미미는 앞좌석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루언은 발라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안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었고, 가로등 불빛은 점점 멀어져 갔다.
주단은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앞좌석에 앉은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가느다란 머리카락,
저녁노을이 그녀의 옆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아침의 장면을 떠올렸다.
안이 그 남자와 대화하던 모습.
주단은 사실 그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자신의 비밀이 드러날까봐... 너무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조롱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지키는 말로 응수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꿰뚫어보면서도 등을 돌리지 않은 순간.
그의 시선 속엔... 이제 안을 대하는 감정이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장비를 정리하며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때, 위층에서 빈이 허둥지둥 내려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손에는 종이 서류와 빨간 USB가 들려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핀 뒤,
안에게 조용히 손짓하며 뒤쪽 복도로 데려갔다.
자동판매기와 차가운 금속 의자가 놓인 곳.
"안... 큰일이야."
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국 PD 컴퓨터에 'Proposal VN'이라는 폴더가 있어.
처음엔 그냥 캐스팅 초기 자료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스캔된 계약서 파일이 있었어.
거기... 너 이름이 있어."
안은 멈췄다.
"내 이름?"
"응. 단순한 인사 리스트가 아니야.
메모처럼 적혀 있었어.
'베트남 측에서 추천한 인물 – 아티스트 접근 지원, 특히 주단.
부드러운 연결 가능, 프로젝트에 적합할 경우 우선 고려.' 라고."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녀는 아직 말을 잇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 순간, 뒤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구두 소리.
주단이 복도의 역광 속에서 걸어 들어왔다.
목에 걸린 헤드폰 한 쪽은 여전히 어깨에 걸쳐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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